The Tortured Poets Department / Taylor Swift

   

테일러 스위프트의 앨범들 가운데 내가 다룬 적 있는 앨범은 <Folklore>와 <1989 (Taylor’s Version)>이다 (참조–https://sjmusicnote0.blogspot.com/2024/02/1989-taylors-version-taylor-swift.html). 2020년 나온 <Folklore>는 테일러 스위프트의 음악에 대해 갖고 있던 선입견을 깨뜨리게 된 결정적 계기였다. 더 내셔널(The National)의 아론 데스너(Aaron Dessner)가 프로듀싱에 참여해 컨트리에서 팝으로 전향한 이 스타의 음악을 아늑한 인디 포크 분위기로 이끈, 새로운 음악적 방향을 성공적으로 구축한 앨범이었다. 본 이베어(Bon Iver)의 저스틴 버논(Justin Vernon)이 듀엣으로 노래한 Exile은 아마도 앨범에서 가장 빛나는 러브송이 아니었을까.



<Folklore>의 뒤를 이어 테일러 스위프트는 서프라이즈 릴리즈로 비슷한 맥락과 분위기를 가진 자매 앨범 <Evermore>를 같은 해에 발표했다. 그리고 2년 뒤 다시 정규 앨범 <Midnights>를 발표한다. ‘새벽’ 시간만의 아우라와 접목해 풀어낸 <Midnights>의 음악들은 다크하고 관능적인 무드로 채워져 있다. 어디까지나 막연한 생각에서 라나 델 레이(Lana Del Rey)가 수상할 거라 예측하면서 2024년 그래미 시상식을 시청하다가 이 앨범이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하는 장면을 목격하던 기억이 선명하다. 수상을 한다는 건 아무튼 공식적으로 인정받는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이 앨범에 수여된 유서 깊은 그래미의 ‘올해의 앨범상’은 작품의 가치에 불변의 힘을 실어주었다.


<Midnights> 다음으로 그녀가 선보인 것은 <The Tortured Poets Department>이다. ‘고문 받는 시인들의 부서’라는 제목으로, 늘 그렇듯 컨셉을 가시적으로 잘 이끌어내고 있다. 색채의 강렬함을 살리기보다는 모노톤으로 처리해 은은한 무드를 조성하는 방향을 취했다. 로맨스와 욕망이 중심이 된 만큼 앨범의 커버 이미지도 에로스적 연출을 허용했다. 뮤지션 스스로가 이 앨범에 대해 ‘반드시 필요했던 것’이라 언급한 만큼 여기에 담긴 이야기들은 개인적 경험을 들여다보고 정리하는 과정으로 비춰진다.

미드 템포로 차분히 진행되는 Fortnight에는 묘한 중독성이 있어 자꾸만 반복해 듣게 된다. 포스트 말론(Post Malone)이 피처링한 이 곡은 앨범 전체의 내용을 느슨하게 함축하는 도입의 역할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화자는 오인받는 상황에 처해 있었고(I was a functioning alcoholic / 'Til nobody noticed my new aesthetic), 대상을 욕망하기에 그의 배우자를 죽이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Your wife waters flowers, I wanna kill her), 단 이주만이라도 그의 곁에 머물고 싶었고(I touched you for only a fortnight / I touched you, but I touched you), 결국 자신의 삶을 망가뜨리는 사랑을 하고 있다(I love you, it’s ruining my life). 현실에서 불가능해 보이는 그들의 사랑이 이루어질 희망은 ‘당신이 내 곁에서 나를 만지기 전까지 일어나지 않는다(But it won't start up till you touch, touch, touch me)’고 말한다. 이 노래에 그려진 사랑은 욕망으로 구체화되고, 욕망은 ‘터치’가 가능할 만큼 서로 가까이 머물러야만 충족된다. 또한 그 사랑은 제한적이며 치명적이다. 이성적으로 따졌을 때 득과 실이 분명한데도 종종 거기에 휘말려 드는 것은 ‘욕망’의 부추김 때문일 것이다. 욕망은 대상이 가지고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주체가 보는 무언가를 대상에게 과하게 투영한 심리적 과장일 수도 있다. 정신 분석학적 관점에 따르면 욕망은 무의식의 영역에서 발현되고 결코 충족될 수 없는 결핍의 일종이다. 욕망은 여러 현실적 제약에 의해 금지되거나 추구에 위험이 뒤따르는 경우가 많지만 많은 창작의 발단이 욕망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사실과 욕망의 힘을 잘 이용했을 때 좋은 성과를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속단해 외면해버릴 수는 없다. 결과적으로 누군가를 ‘욕망한’ 것은 사랑이라기보다 단지 사랑의 형상으로 드러난 잘 제어되지 않는, 대상을 향한 무의식적 반응이었을 수 있다.

Fortnight에 새겨진 대상을 향한 욕망은 다음의 곡들에서도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Down Bad에서 화자는 ‘정말 최악이야 / 엿 먹어 내가 그를 가질 수 없다면 (Down bad / Fuck it if I can't have him)’이라 말하고, But Daddy I Love Him에서는 ‘난 지금 드레스 단추도 잠그지 않고 달려가고 있어, “하지만 아빠, 난 그를 사랑해요, 그의 아이를 가졌어요”라고 소리친다(Now I'm runnin' with my dress unbuttoned / Scrеamin', "But, Daddy, I love him" / I'm havin' his baby). Fresh Out The Slammer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난 지금 네게로 달려가고 있어, 감옥에서 막 나와서, 누구에게 가장 먼저 전화할지 알고 있어(I'm runnin' back home to you / Fresh out the slammer, I know who my first call will be to)’.


플로렌스 앤 더 머신(Florence & The Machine)이 피처링에 참여한 Florida!!!는 이 욕망이 향하는 종착지로, 이 곡은 망침과 붕괴의 축제를 그려낸다. 플로리다는 도피의 땅이고, 모든 파국적 결말 이후 욕망하는 자의 시선이 머무는 궁극의 장소이다.


Clara Bow는 인상적인 클로징 트랙이었다. 1920년대에 스타덤에 올랐던 여배우 클라라 보는 스티비 닉스(Stevie Nicks)가 되고, 마지막엔 테일러 스위프트 자신이 된다. 이렇듯 화자는 세 인물을 동일시하는데, 이들의 공통점이라면, 여성 뮤지션과 배우로서 살아가는 데 있어 풍파가 많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초반의 곡들이 사랑의 비극성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 트랙을 통해 뮤지션은 인물이 가진 비극으로 시선을 돌린 셈이다. 너무 비관적인 결말에 다다른 걸까? 그러나 ‘이 마을은 가짜이지만, 너는 진짜야 (...) 영광을 얻고 네 모든 걸 바쳐 / 눈부시게 빛날 거라고 약속해(This town is fake, but you're the real thing (...) / Take the glory, give everything / Promise to be dazzling’ 같은 가사를 보면, 뮤지션이 초기에 구축했던 동화 모티프의 믿음과 감동이 완전히 닫히지는 않은 것 같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11번째 정규 앨범 <The Tortured Poets Department>는 유난히 그윽한 분위기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나의 베스트는 역시 Fortnight이다. 중저음의 메인 보컬과 포스트 말론의 듀엣 보컬이 결합해 낭만적이고도 위태로운 사랑의 서사를 들려준다. 테일러 스위프트가 직접 연출한 뮤직비디오도 흥미로웠다. 산꼭대기에 놓인 전화 부스에서 포스트 말론이 전화를 걸고 있고 부스 위에 앉아 비를 맞고 있는 테일러 스위프트의 모습이 특히 인상 깊었다. 카메라는 줌아웃으로 뇌우가 쏟아지는 날씨와 산이라는 자연적 배경을 동시에 담아낸다. 테일러 스위프트가 왜 전화 부스 위에 앉아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전화 부스 위에 앉은 요정이나 고양이 등의 장식품 같은 것을 표현한 게 아닐까 싶은데, 주인공들의 비상식적인 자리는 풀리지 않아서 더 매혹적이다. 둘은 마침내 서로의 손을 잡는다. 한 사람이 부스 위에 있으니 두 사람은 보통의 연인처럼 손을 옆으로 내밀어 나란히 잡는 것이 아니라 위로 내밀고 아래로 내밀어 마주 잡아야 한다. 단 이주간만 주어지는 삶을 망치는 사랑. 비극적 요소만이 꽃을 피우는 사랑.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볼 가치가 있었는가? <The Tortured Poets Department>는 개인의 욕망을 창의적 열정으로 승화한 앨범으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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