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025의 게시물 표시

Closing Time / Tom Wa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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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미한 기억에 의하면, 내가 톰 웨이츠의 음악을 처음 접한 건 짐 자무시(Jim Jarmusch) 감독의 영화 <지상의 밤(Night on Earth)>을 통해서였던 것 같다. 지구의 이미지와 함께 톰 웨이츠의 노래가 우렁차게 울려 퍼지던 오프닝 신은 이 영화의 세계를 함축하는 인상적인 도입이었다. 생각난 김에 잠깐 영화 얘기를 하자면, <지상의 밤>은 옴니버스식 구성으로 다섯 가지 에피소드로 나뉘어 있고, 각각의 도시에서 택시 운전을 하는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심야의 택시 운전수와 승객의 대화가 중심 스토리가 되어 흘러간다. 그중 첫 번째인 로스앤젤레스 편은 위노나 라이더(Winona Ryder)가 맹랑한 연기로 시선을 강탈하던 제법 유머러스한 에피소드였다. 캡 모자를 뒤집어쓰고 줄담배를 피워 대고 풍선껌을 씹는 이상한 아가씨 운전수 캐릭터가 위노나 라이더의 연기로 형상화되어 나타나고 있었다. 영화의 연출은 드라이하고 미니멀한 편이지만 유머와 위트, 매끄럽지 않은 소통이 만들어내는 공백들, 인생사의 부조리에 관한 시선 등이 골고루 녹아 있어, 감독 특유의 개성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톰 웨이츠는 나중에 짐 자무시 감독의 영화 <다운 바이 로>, <커피와 담배> 등에 출연도 하게 되는데, <지상의 밤>에서는 사운드트랙 작업을 담당했다. 영화에서 간혹 흘러나오던 그의 고딕풍 사운드는 영화를 더욱 이색적으로 채색하는 숨은 주역이었다. 오프닝 곡과 사운드트랙에서 특히 좋았던 곡 영화 <커피와 담배>에 출연한 이기 팝과 톰 웨이츠 영화에 관한 각별한 기억 때문에 서두가 좀 길어졌는데, 아무튼 톰 웨이츠의 이름은 음악계나 영화계를 통해 자주 들어온 것이 분명하다.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 못지않은 걸걸하고 어글리한 보컬 스타일, 그리고 가사에 묻어나는 외로움 등의 정서는 우연히라도 한번 들으면 결코 잊을 수 없는 각인을 새...

Time out of Mind / Bob Dyl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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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로써 세 번째 밥 딜런 레코드가 도착했다. <The Freewheelin’ Bob Dylan>에서 <Blood on the Tracks>로, 다시 <Time out of Mind>로 나름대로 나만의 밥 딜런 음악의 지도를 그렸다. <The Freewheelin’ Bob Dylan>은 그의 두 번째 앨범, <Time out of Mind>는 서른 번째 앨범이다. 위의 세 레코드들만으로 밥 딜런의 음악 전체를 조망하기는 어렵겠지만, 대체로 그의 대표작이라 여겨지는, 대중적 성향의 앨범들이므로 그의 음악세계를 개괄적으로 훑어보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거대한 산처럼 느껴졌던 이 뮤지션의 음악적 행보를 탐정처럼 추적해 볼 수 있었던 유익한 시간이기도 했다. 2023년에 나온 가장 최근작 <Shadow Kingdom>까지 모두 40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한 밥 딜런. 고정관념 같은 생각이지만, 나이가 많이 들면 무대 생활을 접고 조용히 집에 머물며 지낼 것 같은데, 그는 지금도 투어를 하고 있어 팬들은 여전히 현장에서 그를 직접 만나고 그의 음악과 함께 호흡할 수 있다. 시기적으로 1997년 작품인 <Time out of Mind>는 뮤지션의 중기 앨범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인간의 나이에 비유한다면 40대 후반 정도랄까. 이 앨범은 발표 당시 그래미에서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하는 가시적인 성과를 이루었다. 그만큼 작품성과 대중성이 균형 있게 잘 드러난 앨범이라 볼 수 있을 것 같다. <Time out of Mind>로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하는 장면의 영상. 놀랍게도 후보에 라디오헤드가 있다. 그리고 이 앨범은 다음의 행보를 구분 짓는 기점이 되기도 한다. 1980년대 후반 U2의 보노(Bono)가 밥 딜런에게 프로듀서 다니엘 라누아(Daniel Lanois)를 소개해 주었다. 그리고 이들의 협업은 밥 딜런의 앨범 <...

Sideways Original Soundtrack / Rolfe K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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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드웨이>는 지난주에 살펴보았던 <바튼 아카데미>를 감독한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네 번째 장편 영화로 2004년 처음 개봉했다. 와인 산지의 풍경을 형상화한 것 같은 연두색 배경에 와인색 컬러로 포인트를 준 커버 이미지가 눈길을 끈다. 와인병에 갇힌 두 주인공의 캐리커처는 영화의 코믹함을 적절히 포착하고 있다. 이 영화는 렉스 피켓(Rex Pickett)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고, 알렉산더 페인 감독과 각본가 짐 테일러(Jim Taylor)가 공동으로 각본 작업을 했다. 공개 이후 영화는 대체로 비평적인 찬사를 받으며 여러 차례 수상을 했다. 작품성을 인정받음과 동시에 흥행 면에서도 중저예산 규모 대비 큰 성공을 거두었다. <사이드웨이>는, 말하자면 필터링이 가능한 한 배제된 스타일의 연출을 선보인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장르로는 비틀린 유머 감각이 독특한 웃음의 포인트를 자아내는 코미디 드라마이고, 주제 면에서 와인 없이 성립할 수 없는 테마 영화이기도 하다. 큰 줄거리는 이러하다. 40대의 두 친구가 결혼을 앞두고 총각파티 삼아 와인 산지로 여행을 떠난다. 절친인 두 사람의 거침없는 대화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려져 둘의 케미를 보는 것부터 흥미진진하다. 사실 두 사람은 상반된 성격을 가지고 있고, 결국 그 차이는 서로의 불충분함을 보완하고 힘을 보태는 것으로 드러나며 따스함을 자아낸다. 결혼을 앞둔 잭은 ‘한물 간’ 배우로 쾌락주의자이고 약간은 현실도피자이기도 하며, 감정적이고 능청스러운 성격을 가졌다. 절친 마일스는 잭과 반대되는 성격을 지녔고, 완전한 패배자에 가깝다. 성공 못한 작가이고, 항우울제를 복용하며 여전히 이혼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했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러니까 두 친구가 여행에서 돌아올 때까지 그를 구제할 가능성은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희미하게 버텨주던 책 출판의 기회마저 좌절되고, 전 부인의 재혼 소식까지 접하며 그는 더 깊은 상심에 빠져든다. 그런 ...

The holdovers Original Soundtrack / Mark Orton and Various Artis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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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튼 아카데미> 사운드트랙은 크리스마스가 되면 리뷰하려고 보관하고 있었는데, 11월의 시작에, 조금 이르지만 꺼내기로 했다.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네브라스카>를 재감상했던 것이 이 작업의 잠정적인 시작이 된 것 같다. (사두고 뜯지 않았던 <사이드웨이> 사운드트랙도 얼마 전 개봉을 했으니… 그것도 조만간 리뷰해 보면 좋을 것이다) <네브라스카>는 알렉산더 페인(Alexander Payne) 감독 특유의 블랙 유머가 스며 있는 영화이고, 흑백인데도 시각적으로 단조로움 없이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과거에도 본 적이 있지만 이번엔 또 다르게 다가왔다. 영화에 그려진 상황이 유난히 실감 났다고 할까. 고집불통이 된 아버지, 그를 모시고 네브라스카로 향하는 아들, 거침없는 언변과 태도로 다정함을 찾아볼 수 없는 어머니로 구성된 그랜트 가족의 이야기. 일상적 서술 사이에서 웃음과 따스함을 이끌어내는 연출은 그야말로 일품이다. 사운드트랙 또한 기품이 있었다. 마크 오턴(Mark Orton)이 스코어를 담당했는데, 틴 햇(Tin Hat)이라는 재즈 기반의 챔버 그룹 멤버이기도 한 그는 스토리를 소박하게 투영하고 묘사해 영화에 매우 잘 어울리는 음악들을 선보였다. 별로 튀는 곳이 없는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영화처럼, 마크 오턴의 음악도 튀는 데가 없어서 우리가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스타일이라 말할 수 있지만, 우연히라도 한번 방문한다면 결코 잊을 수 없는 그런 작품과 음악임에 틀림없다. 크리스마스 코미디 <바튼 아카데미>는 꽤 사랑스러운 작품이다. 체리쥬빌레를 제조하는 장면, 우리만의 비밀, ‘앙트레 누’를 이야기하는 장면들, 밀러를 맥주계의 샴페인이라고 비유하는 유머 등 독특한 질감과 감성이 영화의 분위기를 개성적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구조적으로 이 영화는 현실에 대한 풍자나 유머, 일상에 맞닿은 지지부진해 보이는 드라마를 포착하며 그 안에 깃든 휴머니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