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e out of Mind / Bob Dylan

   

이로써 세 번째 밥 딜런 레코드가 도착했다. <The Freewheelin’ Bob Dylan>에서 <Blood on the Tracks>로, 다시 <Time out of Mind>로 나름대로 나만의 밥 딜런 음악의 지도를 그렸다. <The Freewheelin’ Bob Dylan>은 그의 두 번째 앨범, <Time out of Mind>는 서른 번째 앨범이다. 위의 세 레코드들만으로 밥 딜런의 음악 전체를 조망하기는 어렵겠지만, 대체로 그의 대표작이라 여겨지는, 대중적 성향의 앨범들이므로 그의 음악세계를 개괄적으로 훑어보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거대한 산처럼 느껴졌던 이 뮤지션의 음악적 행보를 탐정처럼 추적해 볼 수 있었던 유익한 시간이기도 했다.

2023년에 나온 가장 최근작 <Shadow Kingdom>까지 모두 40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한 밥 딜런. 고정관념 같은 생각이지만, 나이가 많이 들면 무대 생활을 접고 조용히 집에 머물며 지낼 것 같은데, 그는 지금도 투어를 하고 있어 팬들은 여전히 현장에서 그를 직접 만나고 그의 음악과 함께 호흡할 수 있다. 시기적으로 1997년 작품인 <Time out of Mind>는 뮤지션의 중기 앨범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인간의 나이에 비유한다면 40대 후반 정도랄까. 이 앨범은 발표 당시 그래미에서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하는 가시적인 성과를 이루었다. 그만큼 작품성과 대중성이 균형 있게 잘 드러난 앨범이라 볼 수 있을 것 같다.

<Time out of Mind>로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하는 장면의 영상. 놀랍게도 후보에 라디오헤드가 있다.

그리고 이 앨범은 다음의 행보를 구분 짓는 기점이 되기도 한다. 1980년대 후반 U2의 보노(Bono)가 밥 딜런에게 프로듀서 다니엘 라누아(Daniel Lanois)를 소개해 주었다. 그리고 이들의 협업은 밥 딜런의 앨범 <Oh Mercy>와 이 앨범 단 두 작품을 남겼다. 그저 음악계의 바깥에 있는 팬의 관점에서 재미있는 사실은, 밥 딜런과 다니엘 라누아의 음악 스타일이 많이 달라서 두 사람이 같이 작업을 할 때 충돌이 많았다는 부분이었다. 1989년작 <Oh Mercy> 이후, 이듬해 밥 딜런이 발표한 <Under the Red Sky>는 비평계로부터 혹평을 받았고, 그러한 부정적 평가 탓인지 밥 딜런은 한동안 새 앨범 작업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1997년 다시 다니엘 라누아를 만나 <Time out of Mind>를 작업했고, 이 앨범은 팬들과 음악계로부터 밥 딜런의 ‘귀환’처럼 받아들여지며 환영받았다. 하지만 그들의 협업은 여기에서 끝이 난다. 앨범의 크레딧을 보면, ‘Produced by Daniel Lanois… in association with Jack Frost Productions’라 표기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잭 프로스트는 밥 딜런의 가명이다. 그러니까 밥 딜런의 셀프 프로듀싱 체제가 여기에서 희미하게 드러났고, 이 앨범 이후부터 그는 본격적으로 잭 프로스트와, 그러니까 자기 자신과 앨범 제작을 해 나가고 있다.

다니엘 라누아 프로듀싱의 앨범 <Oh Mercy>에서 가장 좋았던 두 곡

혹평을 받았던 앨범 <Under the Red Sky>의 첫 곡 Wiggle Wiggle


Love Sick은 염세적인 분위기로 가득 찬 첫 트랙이다. 가사는 아주 간결한 형태로 ‘사랑에 지친’ 화자의 어두운 내면을 그려내며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몰두한다. ‘난 사랑에 지쳤어 / 당신을 만나지 않았다면 좋았을 거야 / 난 지쳐버렸어 / 당신을 잊으려고 애쓰고 있어 (I'm sick of love / I wish I'd never met you / I'm sick of love / I'm trying to forget you)’라고 말하지만 마지막엔 이 생각을 살며시 뒤집는다.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 / 당신과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뭐든 줄 수 있는데(Just don’t know what to do / I'd give anything to be with you)’라며, 결국 상대방을 너무 사랑해서 지쳐버린 듯한 양면적 심리를 드러낸다. 퉁명스러운 리듬 패턴과 습기가 찬 듯 축축한, 저지대의 공간감을 풍부하게 채우는 사운드가 서로 조화를 이루는 빈티지 무드에 누아르적인 테마로 어필하는 오프닝 트랙. 시니컬한 보컬과 루즈한 템포의 불량함으로 마음의 스산함을 묘사하는 듯하다.


Dirt Road Blues의 보헤미안 정서는 Standing in the Doorway에서도 이어진다. 하지만 이 발라드 곡은 다소 감상적인 가사를 가지고 있다. 사운드 면에서도 앞의 두 곡에 비하면 그리 두드러지는 것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Oh Mercy>에 더 어울리는 트랙이라고 생각되기도 했다. Million Miles는 탄성 있는 블루스 리듬으로 귀를 사로잡는다. 보컬은 백 프레이징으로 그루브 있는 스타일을 연출하고 있다. 마지막 구절 ‘I’m trying to get closer but I’m still a million miles from you’를 반복하면서 화자는 자신이 상대방과 얼마나 멀게 느껴지는지를 강조한다.

Trying to Get to Heaven은 가사가 무척 아름답게 느껴지는 곡이다. 밥 딜런에게 영성의 가치가 중요한 테마로 다루어져온 점을 미루어 볼 때, 이 곡을 그런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강을 따라 내려가 / 뉴올리언스로 / 사람들은 모든 게 다 잘 될 거라고 말하지만 / 난 ‘다 잘 될 거’라는 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I’m going down the river / Down to New Orleans / They tell me everything is gonna be all right / But I don’t know what “all right” even means)’, 이 가사가 특히 좋았던 것 같다. ‘걱정하지 마, 다 잘 될 거야’라는 위로의 말을 건네도 화자에게는 그 말이 사람들에게와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아웃사이더의 내면을 포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가사는 단순히 냉소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화자의 처참한 내면 풍경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마음으로부터의 동떨어짐, 사랑하는 이로부터의 동떨어짐, Million Miles를 통해 이야기했듯, 아득히 멀리 떨어진 것 같은 심리적 단절의 위태로움이 이 앨범에 일관되게 그려져 있었다.


두 번째 엘피의 첫 곡 Cold Irons Bound에 이르러 다시 사운드에 주목하게 된다. 저마다의 소란스러움으로 조화를 이루는, 약간의 사이키델릭 터치가 묻어나는 사운드스케이프. 두께감이 있는 기타 패턴과 오르간 패턴들이 ‘차가운 쇠사슬에 매인’ 화자의 절망감을 가중시킨다.

Make You Feel My Love는 앰비언스를 유지하지만 투박한 피아노와 보컬을 매치해 윤을 내지 않고 자연스러운 빛을 발하도록 유도한 팝 발라드 트랙이다. 사랑의 서약 같은 가사는 기독교적 관점에서도 해석할 수 있다. 저 멀리 동떨어진 사람 같았던 화자의 모습이 지금까지 위태로워 보였다면, 이 곡을 통해 약간 안도를 찾게 될지도 모른다. 궁극적으로 이 노래는 사랑을 통해 상처 입은 마음으로부터 회복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 같다. 우리 모두에게 ‘당신이 내 사랑을 느끼도록 하겠다,’는 마음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말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 혹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한때 즐겨 들었던 아델의 버전

마지막에 실려 있는 Highlands는 16분이 넘는 대곡이다. 사운드는 균등한 블루스 코드로 노래를 서포트하는 역할에 그치고, 뮤지션은 20절까지 이어지는 가사를 통해 긴 서사를 전달하는 데 주력한다. 데뷔 초기에 ‘토킹 블루스’ 스타일을 채택하며 이야기꾼의 면모로 청중을 사로잡았던 시절을 떠올려 보면, Highlands는 그의 가사가 얼마나 문학적으로 진화했는지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된다. 마지막 행을 반복하며 통일감을 주던 리프레인 형식에서 의도적으로 탈피해, 그야말로 문학 텍스트처럼 직선으로 뻗어나가는 느낌을 형성했다. 물론 노래에는 가락이 있지만 가사 말고는 큰 변화가 없어, 음악적 역할보다 내용에 집중하도록 만드는 실험 트랙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시점에서 <Time out of Minds>를 돌아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 걸까? 얼마간의 시간을 이 앨범과 함께 보내며 내가 마주했던 것 중 하나는, 밥 딜런에게도 실패의 경험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고른 그의 앨범들은 모두 성공작이지만, 그가 세상에 내보낸 40편의 레코드들 중엔 대중으로부터 외면받거나 비평계로부터 쓴소리를 듣는 앨범들이 몇 가지 있었다. 이 포크 레전드 뮤지션이 그러한 시련–음악에 대한 것과 그의 사적인 삶에서 일어난 것들 모두를 포함해–을 어떻게 극복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갔는지 작품을 통해 들여다본다면 유용한 교훈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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