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025의 게시물 표시

Cupid Deluxe / Blood O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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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러드 오렌지(Blood Orange)라는 예명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 흑인 뮤지션의 본명은 Devonté Hynes이고, 줄여서 데브 하인즈(Dev Hynes)라 불린다.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출신 이민자 부모를 둔 그는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룹 테스트 아이시클스(Test Icicles) 활동에 참여한 뒤 솔로 프로젝트 라이트스피드 챔피언(Lightspeed Champion)으로 음악 이력을 쌓아 가던 중 뉴욕으로 활동 거점을 옮겼다. 다른 뮤지션들의 음악 프로듀싱 작업을 병행하면서, 새로 옮긴 터전에서 이방인의 눈으로 보고 느끼고 접한 뉴욕의 복잡한 풍경과 소리가 스며든 데뷔작 <Coastal Grooves>를 발표했다. 그런데 그가 포커스를 맞춘 지점이 예사롭지 않다. 이 음반은 1980년대 후반 뉴욕의 밤 문화와 게이 신을 주제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2집 <Cupid Deluxe>와 데뷔작 두 앨범의 커버에서 일관적으로 트랜스젠더 모델이 등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정확히는 그들이 활동하던 클럽에서 찍은 사진들을 발췌해 자신의 음악과 함께 재해석되게끔 수면 위로 드러냈다고 해야겠지만, 이 두 작업의 테마는 뉴욕의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숨겨진 부흥기에서 뮤지션이 많은 음악적 영감을 받았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더 궁금하다면 다음의 링크를 통해 포토북에 관해 간략하게 살펴볼 수 있다 https://powerhousebooks.com/books/the-forty-deuce/) 1980년대와 90년대 뉴욕의 볼룸(Ballroom) 문화는 백인 사회를 비롯해 주류 게이 신에서조차 소외된 흑인과 라틴계 성소수자들이 만든 대안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무대에 선 트랜스 여성 퍼포머들은 일상에서 그들의 존재 자체가 상당히 멸시받는 혹독한 삶을 견뎌야 했지만, 한편으론 밤의 무대에 오르며 자신다움을 당당히 드러내고 예술적이고 엔터테이너적인 성취감을 얻을 수 있었다. 뉴욕이라는 대도시에서 꽃피우게 된...

The Tortured Poets Department / Taylor Swi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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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일러 스위프트의 앨범들 가운데 내가 다룬 적 있는 앨범은 <Folklore>와 <1989 (Taylor’s Version)>이다 (참조– https://sjmusicnote0.blogspot.com/2024/02/1989-taylors-version-taylor-swift.html ). 2020년 나온 <Folklore>는 테일러 스위프트의 음악에 대해 갖고 있던 선입견을 깨뜨리게 된 결정적 계기였다. 더 내셔널(The National)의 아론 데스너(Aaron Dessner)가 프로듀싱에 참여해 컨트리에서 팝으로 전향한 이 스타의 음악을 아늑한 인디 포크 분위기로 이끈, 새로운 음악적 방향을 성공적으로 구축한 앨범이었다. 본 이베어(Bon Iver)의 저스틴 버논(Justin Vernon)이 듀엣으로 노래한 Exile은 아마도 앨범에서 가장 빛나는 러브송이 아니었을까. <Folklore>의 뒤를 이어 테일러 스위프트는 서프라이즈 릴리즈로 비슷한 맥락과 분위기를 가진 자매 앨범 <Evermore>를 같은 해에 발표했다. 그리고 2년 뒤 다시 정규 앨범 <Midnights>를 발표한다. ‘새벽’ 시간만의 아우라와 접목해 풀어낸 <Midnights>의 음악들은 다크하고 관능적인 무드로 채워져 있다. 어디까지나 막연한 생각에서 라나 델 레이(Lana Del Rey)가 수상할 거라 예측하면서 2024년 그래미 시상식을 시청하다가 이 앨범이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하는 장면을 목격하던 기억이 선명하다. 수상을 한다는 건 아무튼 공식적으로 인정받는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이 앨범에 수여된 유서 깊은 그래미의 ‘올해의 앨범상’은 작품의 가치에 불변의 힘을 실어주었다. <Midnights> 다음으로 그녀가 선보인 것은 <The Tortured Poets Department>이다. ‘고문 받는 시인들의 부서’라는 제목으로, 늘 그렇듯 컨셉을 가시적으로 잘 이...

Purple Rain Original Soundtrack / Prince & The 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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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에 나는 <퍼플 레인> 사운드트랙에 대해 포스팅을 한 적이 있다. 2018년 sj_musicnote 계정을 인스타그램에서 시작하던 초창기였다. 그때 나는 프린스의 열렬한 팬은 아니었고, 그냥 그 앨범이 특색 있어 보여 선택했던 것이었다. 돌아 보니 musicnote 계정을 통해 꾸준히 글을 쓰고, 소극적이지만 소통을 하고, 또 책을 만들고 펴내는 활동을 해 온 지 어느덧 7년 반이 흘렀다. 그리고 지금 나는 약간 프린스의 팬이 되었다고 할까, 그의 음악이 가진 에너지를 재발견하며 마침내 <퍼플 레인> 사운드트랙 레코드를 턴테이블에 올려 보게 되었다. 지난주 <배트맨> 사운드트랙에 대해 글을 쓰면서 프린스의 앨범들을 두루 훑어보게 되었고, <퍼플 레인>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아 영화를 다시 찾아보았다. <퍼플 레인>은 1984년 작품이고, <배트맨>은 1989년으로 둘은 비슷한 시기에 작업되었고, 두 작품 모두 영화 음악 사운드트랙이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아무래도 <배트맨> 하나로 그냥 넘어가기엔 아쉬운 기분이라 한 주 더 프린스의 음악에 머물기로 했다. 사실 <퍼플 레인>이란 영화는 그다지 내 취향이라고 말할 수 없다. 우선 줄거리가 꽤 신파적으로 흘러가고 전개가 작위적인 면이 있었다. 여주인공 아폴로니아 캐릭터가 수동적이고 우유부단하게 그려진 것도 유감스러운 부분이었다. 실제로 이 영화는 그 당시에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는데, 한편으론 흑인 인물에 대한 심층적 심리 묘사를 반영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며 개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한마디로 평단의 반응이 엇갈린 ‘문제작’이었던 것이다. 보고 또 봐도, 영화에 대한 아쉬움을 소거하긴 어려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을 리뷰하는 이유는 역시 음악이 좋고 앨범의 특별함이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위에서 내가 단점으로 언급한 부분들을 제외하면 이 ...

Batman Original Soundtrack / Pri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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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트맨은 DC 코믹스의 만화로 처음 선보인 1939년 이래로, 지금까지 수차례, 여러 감독과 작가들에 의해 때론 코믹하게, 때론 진중하게 그 원형의 이야기를 가공해 재해석되어 왔다. 2000년대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배트맨 이야기는 아마도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 감독이 연출한 “다크 나이트” 삼부작–<배트맨 비긴즈>, <다크 나이트>, <다크 나이트 라이즈>--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1989년 처음으로 거대 자본을 들여 영화화된 팀 버튼(Tim Burton) 감독의 <배트맨>을 주제로 삼았다. 사실상 이 영화를 미국 밖 관객들에게 슈퍼 히어로 ‘배트맨’에 관한 이야기를 선보이는 성공적인 첫 작품이라 볼 수 있을 것 같다. 영화 음악 사운드트랙을 탐색하다가 프린스(Prince)가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 작업을 맡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나는 그 사실이 매우 놀랍고 반가웠다. 훵크와 디스코 사운드의 흥겨움, 솔과 알앤비의 감미로움, 특유의 과시적인 성적 표현과 함께 대단히 저속하면서도 체계적인 팝 음악을 선보이며 자신만의 아이덴티티와 음악 세계를 구축해 간 프린스. 끼가 넘치는 그 뮤지션이 정의를 수호하는 밤의 기사 배트맨의 사운드트랙을 담당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음악에 대해 글을 쓰는 입장에서 각성되기에 충분했다. 애플 뮤직에서 사운드트랙 수록곡들을 하나씩 들어보면서, 팀 버튼의 영화를 이틀 밤에 걸쳐 나누어 보면서… 연일 35도를 넘는 여름의 한 자락을 지나는 동안 이 레코드가 내게 뭔가 새로운 시각을 부여해 줄 것만 같은 기대감에 부풀어갔다.     <다크 나이트의 모든 것>이라는, 80년에 걸친 배트맨의 역사에 대해 다룬 아주 두꺼운 책에 실린 팀 버튼의 인터뷰에서, 그는 프린스의 음악을 좋아하지만 영화 속에 제대로 흡수시키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밝히고 있었다. 영화를 보면 그 말이 무슨 이야...

(500) Days of Summer Original Soundtrack / Various Artis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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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너한 감성이 묻어나는 로맨스 영화 <500일의 썸머>는 연인 관계에 대한 아이러니한 질문을 남긴다. 영화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큰 기여를 한 다양한 문화적 코드들을 제외하고 스토리가 포커스를 맞춘 지점을 들여다보면, 거기엔 연인의 서로 다른 사랑관이 자리해 있다. 톰은 진정한 사랑을 믿는 쪽, 썸머는 사랑이란 판타지라 믿는 쪽이므로 둘은 사랑에 대해 정반대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썸머는 음악에 대한 좋은 취향을 가졌다. 전형적인 미인 같지는 않지만 묘한 매력이 있어 늘 인기가 많았고,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도 솔직한 성격은 썸머라는 캐릭터를 더 돋보이도록 만들었다. 톰과 썸머는 서로에 대한 감정을 확인하고 데이트를 시작하는데, 썸머는 깊은 관계에 빠지고 싶지 않다며 선을 긋는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톰과 헤어진 뒤에 그녀는 톰이 말했던 것처럼 운명의 상대를 만나 결혼을 한다. 영화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아무래도 엘리베이터 신이 아닐까. 무심하게 헤드폰으로 더 스미스(The Smiths)의 음악을 듣고 있는 톰. 같이 탄 엘리베이터에서 썸머는 헤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노래에 귀 기울이며 자신도 더 스미스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서로가 같은 음악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이 상황은, 서로에 대한 호감을 알지 못하던 두 사람을 순식간에 비슷한 부류의 공동체로 묶어버린다. 무수히 많은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들이 순식간에 공기 중으로 흩어지고 ‘이루어질 가능성’ 한 가닥을 남기는 마법의 대화. 연애의 시작에는 대체로 이런 종류의 교류가 있을 것이다. 썸머는 더 스미스의 노래 한 구절을 따라 부르고 태연히 사라져버리고, 톰으로서는 황홀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엘리베이터 사건 이후 톰은 혼자만의 망상을 키워가는데 그를 잘 아는 오랜 친구들은 나름대로 그에게 객관성을 일깨워 준다. 톰의 조숙한 여동생 레이첼도, 때때로 썸머로 인해 통제 불가능한 모습으로 추락하는 톰을 구출한다. 톰의 주변에 머무...